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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보 이슈 - 루이 르노 이야기

루이르노 클래식

루이 르노 이야기

전쟁이 오래 안 걸려 끝날 것이라 믿었던 루이 르노는 종업원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공장을 계속 가동했다. 그것은 비극적인 결정이었고 독일군은 그의 공장을 접수했다. 1944년 8월에 파리가 해방된 후 르노는 독일에 협력한 죄로 체포돼 투옥됐다. 옥중에서의 홀대와 건강 악화로 그는 겨우 3개월 뒤에 숨을 거두었다. 1945년에 르노는 국유화되었고 대중용 승용차 생산으로 다시금 방향을 잡았다. 새 모델들 가운데 중심이 된 차는 4CV로 1946년 9월에 출시됐을 때에는 당시까지 나온 4 도어 세단 중 가장 작았다. 차체 뒤쪽에 얹힌 760cc 4기 통 엔진으로 움직였던 그 자동차는 휠베이스가 겨우 210cm였다. 4CV는 순식간에 성공을 거두었고, 1961년에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100만 대 이상 만들어졌다. 경주용 자동차로는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4CV는 1952년부터 1957년까지 이탈리아의 가혹한 밀레 밀리아 로드 레이스를 석권했다. 르노는 4CV의 뒤를 이어 845cc 엔진의 도핀을 내놓았는데 이 자동차는 열악한 핸들링과 심한 부식으로 평이 좋지 않았음에도 큰 인기를 얻었다. 1960년까지 미국에서만 약 20만 대의 도핀이 팔렸고, 이탈리아와 브라질에서도 라이선스 생산이 이루어졌다. 1961년 R4가 나오면서 르노 승용차에 전륜 구동 방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었다. 이것과 매우 흡사한 R16이 1964년에 나왔는데 이 자동차는 이후 5 도어 해치백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 나온 초 소형차 R5는 중가 소형차 시장에 비슷한 영향을 미쳤다. 각각의 모델들이 르노와 같은 방식을 따른 경쟁사들에게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이 모든 모델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1980년대의 10년은 르노에게 있어 격동의 시기였다. 르노는 그랑프리 무대에 복귀했고 1980년에 프랑스 디종에서 열린 포뮬러 원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것은 터보차저 엔진 레이싱 카로 거둔 첫 우승이기도 했다. 이듬해에 R5터보는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데뷔와 함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화려한 모터스포츠 세계와는 별개로 또 다른 격변이 있었다. 1979년에 르노는 1960년대 이후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했던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면적인 판촉에 나섰다. 르노는 나중에 아메리칸 모토스 코퍼레이션의 지분을 상당 부분 매입했는데, 이 거래는 1987년 크라이슬러가 르노의 AMC 지분을 매입하기 전까지 잠깐 동안 유효했다. 비용 절감을 주도한 조르주 베스가 1986년에 암살당한 후에 일어난 내부 혼란과 판매 감소가 맞물리면서 르노는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흑자 전환을 위한 노력 끝에 르노는 1996년에 민영화되었다. 르노는 1999년에 닛산과 자본 제휴를 맺는 한편 루마니아의 메이커인 다치아 지분도 다량 인수하였다. 1980년대 초반 르노는 새로운 에스파스 MPV를 앞세워 다시금 스타일의 선도자가 되었다. 디자인 책임자 파트륵 르 케망의 지휘 아래, 르노의 다자인 르네상스는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세련된 도시형 자동차인 트윙고는 유럽 전역에서 팬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메간 세닉은 소형 MPV라는 새로운 승용차 등급을 개척했다. 그러나 모든 모델이 송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2001년에 고급 승용차를 재정의 하고자 르노가 내 높은 아방팀은 2년 만에 생산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 불후의 브랜드는 2005년과 2006년에 열린 포뮬러 원에서 월드 챔피언쉽 우승을 거두며 명성을 되찾았다.